1962년생인 나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음력 섣달 열이레로 출생 신고를 하셨기 때문에 양력으로는 아마도 1963년생이 맞을 겁니다. 이런 날짜 논란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출생 신고를 늦게 해서 실제 나이보다 한두 살, 많게는 서너 살 아래 동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형 대접을 받는 이도 많지요.
최근, 대한민국의 건국 일이 언제인지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한쪽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제 치하에서 임시정부가 출범한 1919년 4월 11일을 건국 일로 하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들어 보면 양쪽의 말이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현재를 사는 우리가 둘로 쪼개지고 서로 갈등과 대립을 일삼게 된다면 정확하게 따져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건국일’은 말 그대로 ‘국가를 세운 날’입니다. 그럼 먼저 ‘국가는 무엇으로 정의하나요? 상식적으로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 있어야 비로소 ‘국가’라고 말합니다. 1948년 8월 15일에 우리는 ’한반도(실제로는 ‘남한’)’라는 ’영토’와 그곳에서 사는 ’국민‘, 그리고 이 영토와 국민에게 통치권이 미치고 대외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가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 의해서 구성되었습니다.
1919년 4월 11일은 고종임금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병탄 되고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 인사들이 오늘날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하면서 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입니다. 한반도라는 영토도 그 안에 사는 사람도 그대로였지만 이미 더 이상 이 땅과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보호하고 통치하면서 대외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는 없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이 언제인지를 따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 도서로 한다. ‘라는 헌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영토는 정부의 통치권이 미치는 한반도 남한 지역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한반도 북쪽에 있는 ’조선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별개의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단일민족(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과 한반도라는 틀 안에서 역사를 생각하면서 민족사와 국가를 혼재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나라들은 그들 나름대로 만들어지고 멸한 시기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고려가 태조 왕건의 유지로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해서 고구려가 생긴 날을 고려 건국 일로 할 수 없고 조선의 고종 임금이 조선이나 고조선 보다 훨씬 오래되고 더 컸던 '한' 또는 ‘환국’을 생각하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고 해서 조선의 기원과 강역이 바뀌지 않습니다.
1919년 4월 11일은 우리 민족사와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날입니다. 그렇다고 그날이 지금의 대한민국 건국 일이라는 주장은 다소 무리라는 것이 짧은 소견입니다. 사실, 이번 논쟁의 근본적인 문제는 ’광복절’과 ’건국절‘의 충돌입니다. 8월 15일을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고 나라를 되찾은 날로 할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로 기념할 것인지를 두고 극한의 힘겨루기를 하는 게지요. 광복과 건국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겐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인데 왜 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두 가지 기념식을 다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걸까요? 아마, ’이승만‘이냐? 아니면 ’김구‘나 하는 케케묵은 논쟁을 끌어들여 정치판에서 현실적인 이익을 보려는 속셈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을 갖고 있습니다. 절대 선 또는 절대 악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이승만도 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측면에서 보고 싶은 면만 부각해서 보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보기 싫은 면만 들춰내서 보려 하니 맨날 쌈박질과 더러운 욕지기로 정치를 하는 겁니다. 여야 모두 그렇게 우리나라를 염려하고 국민을 위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두고 머리를 맞대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일에 골몰하는 것이 맞겠지요. 저를 포함한 많은 국민은 이번 일이 과연 광복절 기념식을 따로 해야 할 만큼 큰일인지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역대 정부가 모두 마찬가지로 사람을 쓰는 일은 한결같았고 그에 대한 상대 진영의 반응도 매번 같았습니다. 사람의 역량과 성과는 따져보지도 않고 보수 정부 인사는 친미, 친일이라는 뭇매를 맞고 진보 정부 인사에 대해서는 좌익 빨갱이라는 색깔 공격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광복회장의 체면까지 더해져서 급기야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듯한 일이 생겼는데 나라의 원로들로서, 정치 지도자들로서 부끄러운 짓이었습니다.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언제나 ’참‘입니다.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국가 유공자와 그 후손들을 잘 보살피는 일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고 국민의 도리입니다. 그렇다고 독립운동을 한 조상을 둔 것이 벼슬처럼 여겨져서도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친일매국을 하였거나 공산주의 활동을 한 당사자나 조상을 둔 사람들은 두고두고 민족과 나라, 국민 앞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방법으로 국가사회에 이바지하고 선행을 하는 것마저 깎아내리거나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음서제‘도 ’연좌제‘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일본‘ 또는 ’빨갱이’라는 말만 나오면 혈압이 오르고 이성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이로운 일이 무언지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꼈나요? <저작권자 ⓒ 김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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