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맷 데이먼, 앤 해서웨이, 톰 홀랜드, 젠데이아 등이 출연한 헐리우드 대작 영화 <오디세이>가 최근 국내 개봉하여 여름 극장가에서 큰 흥행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오디세이>는 <일리아드>와 함께 그리스 신화를 대표하는 대서사시입니다.
<일리아드>가 제우스를 중심으로 올림포스산에 사는 신들과 영웅들, 그리고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면,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가능케 한 그리스 최고 미녀 헬레네를 중심으로 한 구혼자 동맹인 '틴다레오스의 맹세'를 제안하고, 10년에 걸친 지루한 트로이 전쟁의 종지부를 찍게 한 '트로이 목마 작전'을 설계한 당사자인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키클롭스족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한 벌로 자신의 배와 부하들을 모두 잃고, 변변한 의복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거지 행색으로 고향 이타카섬에 돌아와 자신의 왕궁 안에서 아내 페넬로페 왕비에 대한 청혼을 구실로 왕국을 어지럽히고 있던 귀족들을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처단하고 마침내 귀향에 성공하는 모험을 담고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면서 겪는 고초와 모험담, 또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아이아스와 아가멤논, 패리스와 메넬라오스 같은 영웅들과 제우스를 비롯한 헤라, 아테나, 아폴론,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 헤르메스 같은 신들이 뒤엉켜 함께 싸우는 트로이 전쟁,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황금사과와 세 여신의 자존심 싸움 같은 이야기는 이미 다들 알고 계실 테니 소개하지 않기로 하고, 잘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한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조금 비틀어 보겠습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제대로 손을 보자 오디세우스는 가지고 있던 모든 배와 부하들을 잃고 표류하다가 정신을 잃은 채 오기기아섬 해변에 닿습니다.
이 섬의 주인은 칼립소라는 여신이었습니다.
칼립소는 자신의 동굴에서 오디세우스를 치료하고 연인이 되어 약 7년간 함께 생활합니다.
그러면서 유한한 인간의 삶을 살지 말고 자신과 함께 신처럼 영원히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영생을 살자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늙어가고 언젠가는 죽게 될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자신의 고향 이타카를 생각하며 칼립소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사실 칼립소가 보내주지 않으면 오기기아섬을 나갈 방법이 없는 오디세우스로서는 달리 어찌할 방도도 없이 영원히 억류된 채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했겠지요.
이때 지혜를 관장하는 여신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중재를 요청하고, 제우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시켜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보내주라고 합니다. 아무리 칼립소가 여신이라 해도 올림포스산의 주인인 제우스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오디세우스를 보내주기로 약속하지만 마음이 상한 칼립소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왜 제우스를 비롯한 남신들은 수많은 인간 여자를 집적대고 자신의 여자로 삼으면서, 내가 인간 남자를 사랑하는 꼴은 못 봐주는가!" 하고 말이죠.
그리스 신화가 좀 더 대중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마도 신들이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속이고, 배신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등 능력과는 별개로 적어도 감정만큼은 인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올림포스산조차 남존여비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능력치만 보더라도 제우스는 자신의 머리를 깨고 이지스의 방패와 창을 든 아테나를 낳았지만, 이를 따라 했던 헤라는 신체적으로 불완전한 절름발이 헤파이스토스를 낳았으니까요.
또한 제우스는 비록 가끔 아내인 헤라의 눈치를 보지만 수없이 많은 인간 여인들을 유혹하고 잠자리를 갖는 여성편력을 보여줍니다. 제우스뿐만 아니라 많은 남신들이 인간 여인들과의 사이에서 영웅들을 탄생시키지요.
반면 여신들의 일탈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우스를 낳은 바다의 님프(요정) 테티스가 프티아의 왕인 인간 영웅 펠레우스와 결혼하고,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 대놓고 바람을 피운 정도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고 카오스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탄생합니다. 가이아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낳고 우라노스와의 사이에서 크로노스를 비롯한 티탄 12신이 탄생하지요.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한 크로노스는 "너 역시 나처럼 자식들에 의해 쫓겨날 것이다"라는 우라노스의 저주로 인해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렸습니다.
하지만 막내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 레아가 돌멩이를 기저귀로 싸서 크로노스에게 먹이고 제우스를 빼돌려, 성장한 제우스가 크로노스에게 토하는 약을 먹여 하데스와 포세이돈 등 형제들을 토해내게 합니다.
그리고는 키클롭스들을 구해준 대가로 선물 받은 번개와 삼지창, 투명 투구 등으로 무장하고 약 10년에 걸친 전재 끝에 아버지 크로노스와를 몰아내고 세상을 천계와 사후세계, 바다로 나누어 각각 지배하게 되지요.
아마도 가이아의 세상은 종족 번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계사회였을 것입니다. 이후, 식량을 구하고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부계사회로 변하지만, 레아와 헤라의 역할이 그렇듯 여성의 역할도 남성의 불완전성을 채워주는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디세이>는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영웅이 그 영웅심리로 인해 고난을 자초하고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정작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 우리에게 많은 물음표를 남기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영화는 또 다른 해석이 있고 느낌도 다를 것입니다.
아직 폭염이 남아있는 여름, 냉방 잘 된 영화관에서 <오디세이>를 관람하시는 건 어떤가요?
영화를 보시기 전에 원작 서사시를 한 번 정독하시고 가시면... 더 재미가 있을까요? 아니면 없을까요?
열대야를 원망하면서 문을 꽁꽁 닫고 에어컨과 선풍기를 함께 돌린 게 엊그제인데 어젯밤엔 창문을 활짝 열고 자면서 잠결에 슬그머니 얇은 이불을 끌어다 덮은 것 같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맛으며 걷는 아침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멋진 한 주, 힘차게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