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도시연합군과 트로이 왕국 간에 벌어진 10년 전쟁은 그리스 이타카의 군주였던 오디세우스의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트로이가 멸망하는 것으로 결말을 맞게 됩니다.
신과 인간들이 각자의 입장과 이익을 위해 동맹을 맺거나 적이 되어 싸우고 유럽의 역사 흐름을 바꾼 이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그들이 원했던 것들을 과연 얼마나 성취했을까요?
먼저 트로이 전쟁의 책임자를 색출해 볼까요?
우선, 불화의 여신 에리스입니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데 앙심을 품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인 황금사과를 던져 놓음으로써 가장 원초적인 원인 제공자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입니다. 남편인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두고도 전쟁의 신 아레스와 공공연히 외도를 일삼았던 그녀는, 황금사과를 놓고 헤라·아테나 여신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유부녀인 줄 뻔히 알면서도 헬레나를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고 파리스에게 약속하고 이를 실행했습니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아내 헤라 역시 전쟁 발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파리스의 선택으로 황금사과의 주인이 아프로디테로 결정되자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내심 트로이를 멸망시키겠다는 생각을 품었으며, 결국 신의 권능을 이용해 전쟁을 부추기고 전쟁 중에도 수시로 개입했습니다.
인간 중에서는 아무래도 그리스군 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총괄했던 미케네의 군주 아가멤논을 먼저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동생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자 그리스 최고의 미인을 되찾아 온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실상은 트로이가 차지하고 있던 에게해와 헬레스폰투스 해협의 해상무역 경제권을 손에 넣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출항의 바람을 얻기 위한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트로이 원정에 매달렸습니다.
그 외에도 아들 파리스로 인해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도 아들의 목숨을 거두는 일에 치밀하지 못했던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 파리스를 죽이라는 명령을 거역한 시종,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아내와 함께 도망쳐 배에 숨어 있던 것을 알고도 뱃머리를 돌리지 않은 헥토르 왕자, 그리고 헬레나를 위한 구혼자들의 서약인 '틴다레오스의 맹세'를 제안하여 결국 그리스 전체가 트로이를 향해 진군할 수밖에 없게 만든 오디세우스도 전쟁 책임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정작 당사자들인 '헬레나, 파리스, 메넬라오스'에게는 책임이 없을까요?
헬레나는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해 정을 통한 인간계 여인 레다의 딸로 태어나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하지만, 그리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 트로이의 젊은 왕자 파리스와 사랑에 빠져 세기의 도피를 결행함으로써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만 파리스와의 사랑이 아프로디테의 부탁을 받은 에로스의 황금 화살 때문이라는 신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감안하면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트로이 왕자 파리스 역시 신탁대로였다면 태어나자마자 죽었어야 했지만, 운명의 굴레는 그를 살려두는 대신 황금사과의 주인을 가려야 하는 위험한 함정에 빠뜨렸고, 결국 헬레나를 빼앗아 트로이로 돌아옴으로써 전쟁의 직접적인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그리스 전체의 구혼을 받은 미녀 최고의 미녀 헬레나에게 선택받은 행운의 사나이였지만, 그 행운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탓에 실망과 외로움을 느낀 헬레나가 파리스와 함께 떠나게 되자 형 아가멤논을 찾아가 헬레나를 되찾기 위한 트로이로의 진격을 요청합니다.
전쟁의 결과로 트로이는 멸망합니다. 아이네아스를 비롯한 일부 일족이 가까스로 몸을 피해 바다를 떠돌다 훗날 로마를 세우게 되지만, 이는 아주 먼 후일의 얘기지요.
헥토르와 파리스, 아킬레우스 등 수많은 영웅과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고, 그리스 최고의 지혜를 자랑하는 오디세우스는 10년간 바다를 떠돌며 모든 배와 부하를 잃은 채 거지가 되어 가까스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신들 또한 그리스와 트로이 편으로 나뉘어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아프로디테에게 감정이 생긴 헤라와 아테나 여신, 트로이의 전대 왕 라오메돈에게 모욕을 당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이자 바다의 요정인 테티스, 그리고 테티스에게 은혜를 입었던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등이 그리스 편에 섰습니다. 반면 파리스의 선택을 받은 아프로디테, 그녀의情人이자 전쟁의 신 아레스, 트로이인들로부터 많은 숭배를 받는 태양의 신 아폴론, 그의 누이이자 사냥과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 강물의 신 스카만드로스 등은 트로이 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전쟁이 올림포스산 위 신들의 세계에 미친 영향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어차피 사소한 해프닝이자 지루한 일상에서 벌어진 누군가의 하품이나 재채기 같은 작은 흥밋거리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왜?'라는 한 글자인데, 이 '왜?'라는 말은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누군가 책임지울 사람을 찾기 위함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크든 작든 책임 소재와 책임의 무게를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중1 때 처음 읽은 후 지금까지 서로 다른 버전과 형태로 수십 번은 더 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삼국지》와 《어린 왕자》, 그리고 최영미 시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함께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으며 매번 다른 관점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책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고추잠자리 떼가 저녁 햇살 떨어지는 마당 위를 까불까불 날아다니고, 집 뒤에 심어 놓은 사탕수수 끄트머리엔 수수 자루가 패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야 하나 머뭇거리는 게 제법 끝물 여름 태를 냅니다. 선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 같은 화요일 행복하세요~
#트로이전쟁 #그리스신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오디세우스 #트로이목마 #헬레나 #파리스 #아가멤논 #그리스로마신화 #책임이란무엇인가 #오늘의에세이 #생각할거리 #인문학에세이 #김포투데이 #조성춘